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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과 한국축구의 향후 패러다임 변화

뭐라카노 2012. 8. 9. 13:13

한일전 상대전적을 보면 한국이 압도하지만,

사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는 일본이 한국에 중원을 내준 적이 없습니다.

 

구지 노란머리의 라모스, 나카다 히데토시 처럼 우리가 부러워하던 중원의 사령관이 아니더라도,

일본의 미드필더는 기술좋고 패스 잘하는 선수들로 넘쳐났습니다.

패스만 잘할 뿐 아니라 활동량도 상당해서, 도저히 우리로서는 중앙에서 버텨낼 수가 없었죠.

 

일본은 브라질 축구를 동경하며,

J리그 모든 팀들이 남미식 passing 축구를 추구합니다.

그러다보니 대표팀을 소집해서 몇경기 발을 안맞춰도, 자연스럽게 패스게임이 됩니다.

소속팀에서 늘 하던것이기 때문이죠.

 

한국 축구는 기본적으로 빠른 공격전개를 선호합니다.

스타일로 보자면 호날두-루니가 날라다니던 시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죠.

중앙에는 홀딩맨을 주로 두죠. 김남일 유상철...

패싱력까지 갖춘 선수면 좋겠지만, 상대 공격수를 물고늘어지는 면에 점수를 더 줍니다.

K리그 대부분 팀들이 그러했고,

대표팀 소집해서 간혹 패스 잘하는 선수가 한둘 있다한들,

K리그 소속팀에서 하던 속도축구를 버리고 갑자기 다른 축구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일본은 공돌리고, 우리는 막고 하는 형태로 경기가 진행되죠.

그나마 히딩크 약발이 남아있던 2002년 직후에는 체력이 좀 되서,

일본이 공을 돌리기 힘들정도로 많이 움직이면서 우리가 좀 앞서 갔었고,

그 외의 거의 대부분 시기는 중앙을 포기하고 공수간격이 벌어지면서 뻥 축구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본에 중원을 빼앗기고도 그간 대등한 결과물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의 근거없는 자신감과

일본의 빈약한 골 결정력 덕분이었습니다.

일본은 아무리 찬스가 많아도 결국 골이 안들어갔죠.

 

그러다가 혼다와 가가와신지가 등장합니다.

이 둘은 한국에 대한 열등감도 없어보이고(표정이 틀립니다. 내가 세계최고다!라는 표정),

골 결정력도 극강입니다.

이 둘이 등장하고 결국 최근 한일평가전에서 우리에게 0-3 굴욕패를 안겨주죠.

 

저는 올것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경기는 지배해도 골 못넣는 소심한 일본놈들".... 에서

혼다 가가와가 등장한 후

"경기도 지배하고 골 넣는 능력도 출중한 자신감 넘치는 일본놈들"이 된거죠.

 

사실 앞으로 몇년간 한일전은 답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혼다(86년생)랑 가가와(89년생)가 아직 젊다 못해 어린데...

이들이 늙어 못뛸때 까지 기다려야하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한줄기 찬란한 빛이 내리비추니,

기성용 구자철이 등장합니다.

저는 기-구 라인이라고 쓰고, 구세주라고 읽습니다.

 

일본의 점유율 축구를 깨는 비책은,

상대보다 한발 더 뛰어서 상대 패스를 무력화 시키는, 히딩크식 압박축구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본놈들보다 패스 더 잘하는 두명이 등장한 겁니다.

 

물론 기-구 라인은 이번 올림픽에 처음 데뷔한 것이 아니라 몇년전부터 있었죠.

하지만 각자 슬럼프 기간이 있었고, 둘간의 호흡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대표팀에서 이러한 기여도를 보인 것은 이번 올림픽이 처음입니다.

 

여기에 홍명보 감독이 한 술 더뜨네요.

보통 감독이라면 2명에게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2명의 뒤를 받쳐주는 강력한 홀딩맨을 기용할텐데,

파트너로 박종우를 배치합니다.

박종우는 수비도 잘하긴 하지만, 유상철/김남일처럼 홀딩능력이 극강인 선수는 아닙니다.

오히려 구자철 기성용과 비슷한 점이 많은 선수죠.

그러다보니 지금의 미드필더 5명은 누가 공격 누가 수비 이런것이 없고, 다같이 협력합니다.

 

기-구라인의 등장과 홍감독의 취향이 버무려지면서,

드디어 대한민국은 역사에 없던 점유율 축구를 구사합니다.

 

저로서는 너무나도 궁금하군요.

이번경기 중원에서 한국이 일본을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메달과 군복무가 걸려있는 승패 결과 만큼이나 궁금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원을 지배하고 아름다운 패싱축구를 구사하면서 승리까지 해낸다면,

한국 축구의 패러다임이 변화할 것입니다.

2002년 4강진출 이후 K리그 팀들이 저마다 체력 좋은 선수를 기용하기 시작한 것 처럼,

이번에는 제2의 기성용 구자철을 찾겠죠. 그리고 조재진 황선홍류의 타겟형 스트라이커 보다는 패스를 돌릴줄 아는 선수를 기용할 겁니다. 스페인식 제로톱 축구의 영향을 받는거죠. 우리팀도 멕시코전에 박주영을 백성동으로 교체하면서 이미 보여줬구요.

 

전 승리하기를 기원합니다. 이번 한일전은 우리가 향후 "스페인식 선진축구의 흐름을 따라하느냐" 아니면 "히딩크가 세워놓은 승리방정식을 고수하느냐"의 갈림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