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재래시장 나들이
장보는 재미보다 먹는 재미
어머니 손을 붙잡고 동대문시장 뒤 포장마차에서 먹었던 멸치국수,
하굣길에 친구들과 사먹던 떡볶이,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오다가 휴게소에서 먹었던 호두과자.
재래시장과 음식이 얽혀 있는 추억을 1분간 더듬어 뽑아낸 목록들이다(고속도로 휴게소도 일종의 시장으로 친다면).
누구나 시장 먹거리에 대한 추억이 있다.
향수를 자극하는 특유의 맛은 세월이 가도 쉬이 잊혀지지 않는다.
4대문 안 재래시장의 맛집을 찾아봤다.
서울의 역동성이 집약된 공간
남대문시장
언젠가 TV에 출연한 미국인 문화평론가가 “인사동은 서울의 전통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합니다.
인공적인 요소가 너무 많죠.
오히려 가장 역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남대문이 서울의 전통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남대문을 들를 때마다 그 말에 백번 공감하게 된다.
남대문이 가장 역동적인 재래시장으로 꼽히는 이유는 ‘다양성’ 때문이다.
각종 의류부터 액세서리, 문구, 잡화, 침구류, 수입 가전제품 등 없는 것이 없다.
동대문시장이 상대적으로 의류 중심의 시장이라면 남대문은 말 그대로 ‘잡화시장’이다.
그래서 이곳에 모이는 하루 50만명에 육박하는 사람들도 전국에서 운집한 소매상인부터 외국인 관광객까지 다채롭다.
그만큼 화려한 먹거리를 자랑하는 게 남대문시장이다.
기다림이 행복한 가메골 손만두점심시간 무렵, 남대문시장 한켠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사람들이 줄지어 선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생긴 지 3년밖에 안 됐지만 남대문시장의 신흥 명물로 떠오른 가메골 손만두 집이다.
남대문시장 어딜 가도 특유의 분홍색 종이박스를 들고 다니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만큼 맛이 정평이 나 있다.
메뉴는 고기만두와 김치만두 두 가지로 간단하다. 테이크아웃 판매가 대부분이지만 안에서도 먹을 수 있다.
가게 안을 들여다보면 재미난 광경이 펼쳐진다.
약 10명의 직원이 바쁜 손놀림으로 만두만 빚고 있다.
회전력이 굉장히 빠르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오전 11시 이후만 되면 줄 서 기다리지 않고는 만두를 살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기 때문이다.
맛은 약간 단 편이지만 돼지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나지 않고, 만두피도 쫄깃해 간식거리로 훌륭하다.
가격 5개 2,000원 위치 회현역 5번 출구 오른쪽 내리막길 50m 거리
칼칼한 칼국수, 인심도 푸짐하네
바지락 칼국수, 명동교자, 닭 칼국수….
칼국수는 그 종류만도 다양하지만 유독 시장에만 오면 멸치를 우려낸 국물에 유부와 김 가루를 얹은 ‘시장표’ 칼국수가 당긴다.
친절하게도 남대문 시장의 남쪽 입구, 회현역 5번 출구 바로 앞에는 칼국수 골목이 있다.
약 10여 개의 가게들이 밀집해 있고, 메뉴는 대부분 비슷하다.
어느 자리에 앉을지 고민하는 사이 우리네 ‘이모님들’은 서로 “총각, 서비스 많이 줄 테니 이리 와”라고 외친다.
듬성듬성 비어 있는 지하철 빈 자리보다 어느 집에 골라 앉을지 더욱 난감하다.
아무데나 앉아 메뉴를 고르자 이모님은 칼국수 시키면 냉면, 비빔밥 시키면 칼국수를 서비스로 준다고 말한다.
“날씨가 추우니 칼국수를 먹겠고, 냉면은 괜찮다”고 했더니 공기밥이 서비스로 나왔다.
이렇듯 인심이 푸짐하다.
같은 메뉴를 밀집된 공간에서 팔다 보니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한 상인은 말했다.
맛도 괜찮고, 서비스도 쏠쏠하니 어쨌거나 손님 입장에서는 행복하다.
가격 칼국수 4,500원
위치 회현역 5번 출구에서 나오자마자 정면
밥 한 공기 어느새 ‘뚝딱’ 갈치조림
공중파 프로그램에 나왔다는 식당들은 맛집 선정의 공신력은 차치하고 방송사 마크로 간판을 도배한다.
남대문시장의 갈치조림골목도 그렇다.
저마다 원조를 자처하며 똑같은 냄비에 비슷한 반찬으로 손님들을 유인한다.
그렇다면 갈치조림의 맛은 어떨까?
유명세에 비해 아쉬운 점부터 말하자면 갈치의 양이 너무 적다.
1인분에 두 토막이 전부고 냄비 밑에는 무가 두툼히 깔려 있다.
조미료 맛이 많이 나고 지나치게 달다.
밑반찬은 배달용인지 랩에 싸여진 채로 테이블에 올라온다.
위생에 민감한 사람들이라면 눈살이 찌푸려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갈치조림은 밥도둑이다.
보통 2명 이상 왔을 때 계란찜까지 하나 시키면 어느새 밥이 온데간데없다.
남대문시장에서 가장 오래된 갈치조림집 ‘희락’의 문의식 사장은 “처음에만 해도 우리밖에 없었는데 IMF 이후 부쩍 가게가 늘었다”고 말했다.
수많은 갈치조림집 중에서 차별화를 위해 무얼 하느냐는 질문을 했고 “백반집이 뭐 별 게 있겠냐”는 답이 돌아왔다.
밥이 우리의 일상이듯, 갈치조림의 맛은 시장을 찾은 객들에게는 일상 그 이상도 아닌가 보다.
가격 갈치조림 4,500원 위치 남대문시장 본동 사이 골목
1 남대문시장 칼국수 집에서는 냉면, 공기밥 등을 서비스로 제공해 준다
2 온갖 잡화를 판매하는 남대문시장은 하루 평균 50만명 이상이 운집한다.
특히 저녁시간이 되면 거리를 가득 메우는 노점상들로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3 김밥, 떡볶이, 순대외에도 떡갈비 등 독특한 먹거리도 볼 수 있다
4 남대문시장의 필수 먹거리 중 하나로 꼽히는 갈치조림. 갈치 골목에는 수십개의 식당이 몰려 있다
연기자욱한 광장
풍경광장시장
광장시장은 100년을 넘는 역사를 지녔다.
구한말부터 주단, 포목, 직물, 야채, 생선, 정육 등이 거래됐고, 그 전통은 지금에까지 이른다.
철저하게 생활에 밀착된 시장이라 볼 수 있다. 관광객을 유인하기 위한 인공적인 요소는 보기 어렵다.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모인 이들의 순연한 삶의 터전이다.
어묵 국물, 싸구려 커피 연기가 자욱한 먹거리 골목의 분위기도 그러하다.
비결은 ‘묵은지’ 순희네 빈대떡
광장시장 먹자골목의 중심은 빈대떡 집이다.
‘시옷(ㅅ)’자 모양으로 펼쳐진 먹자골목에서 순희네 빈대떡은 중심에 위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맛의 명성에 있어서도 광장시장을 대표한다. 2
0년 가까이 녹두 빈대떡만을 판매해 온 순희네 빈대떡은 광장시장 내에도 곳곳에 지점을 두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곳곳에는 빈대떡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즐기는 어르신들이 모여 있고 시식 코너에는 가던 길을 멈춰선 사람들이 운집해 있다.
한 켠에는 맷돌이 쉼 없이 돌아가며 녹두를 갈고 있다.
맛의 비결을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좋은 재료가 맛의 비결입니다. 1등급 녹두만을 사용하죠. 고기전도 판매하는데 물론 1등급 목삼겹살만을 씁니다.
” 주변에 비슷한 녹두 빈대떡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한데 맛의 차이를 묻자
“다른 녹두전과 맛이 엄격히 차별되는 것은 전라남도 장성에서 담가 1년간 숙성시킨 ‘묵은지’에 있습니다.
1년에 4~5만 포기를 순전히 녹두전만을 위해 담급니다”라고 답했다.
가격 4,000원 위치 먹거리 구간 중간 지점
마약김밥 중독성 있으니 조심
단무지에 시금치, 당근이 전부인데 중독성이 있다고?
이 초라한 김밥이 광장시장의 명물이라는 것은 맛보지 않고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이곳에서 사람들을 중독시킨 김밥을 말고 있는 점주는 “맛의 비결이 뭐냐고요? 절대 알려 줄 수 없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당근이 핵심이라는 것뿐입니다”라고 말했다.
겨자 간장 소스에 찍어 먹는, 입맛을 자극하는 이 조그마한 김밥을 먹기 위해 일본에서도 관광객이 몰려온다는 사실이 자못 놀랍다.
‘꼬마김밥’집이 원조이고, 이외에도 서너 군데 더 있다. 가격 1인분 2,000원 위치 서2문 입구
모듬회에다 생태탕 어때요?
광장시장은 밤 늦은 시간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넥타이를 맨 회사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이 시간 가장 인기있는 메뉴는 ‘모듬회’다.
노량진, 가락동 수산시장의 펄펄 살아있는 회도 좋지만 이곳의 소박한 회 차림도 나름 운치가 있다.
문어, 소라, 바닷장어, 참치…. 가게는 여럿이지만 메뉴는 비슷하다.
가격은 1만5,000원(2인 기준)부터 시작되니 저렴한 편이다. 여기에 옆에서 파는 대구, 생태탕이나 알탕을 함께해 주면 완벽한 조합이 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전 종류를 파는 가게도 많고, 족발, 떡볶이, 순대 등 친숙한 메뉴들도 즐길 수 있다.
가격 1만 5,000원부터(모듬회) 대구, 생태탕 1만4,000원(2인분) 위치 남1문, 동문 방향에 밀집
1 녹두빈대떡은 특유의 바삭바삭함과 고소한 맛으로 광장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메뉴다
2 광장시장의 대구탕,생태탕은 푸짐하면서도 저렴하다
3 중독성이 있어 마약김밥이라 불리는 꼬마김밥
빵도 직접 만들어 먹어요!
방산시장
한번은 동료 기자와 수다를 떨다가 갤러리 분위기의 아담한 카페를 운영해 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랬더니 “요새 커피숍 안 해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운치 있는 카페는 모든 이들의 로망 아닌가?”란다.
손수 만든 커피에 고소한 버터향이 나는 머핀 한 조각을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이들이 늘고 있다.
나름대로 로망을 실현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말이다.
포털 사이트의 홈베이킹 전문 카페는 회원수만 6만에 이른다.
이같은 웰빙 열풍과 DIY의 인기에 힘입어 방산시장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저렴한 재래시장 먹자골목 분위기와 달리 음식 냄새도 나지 않는 이곳은 웰빙 트렌드를 반영하는 공간이다.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광장시장과 마주하고 있는 방산시장이 DIY(Do It Yourself)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방산시장은 오래 전부터 벽지, 장판, 인쇄 등 원자재를 제작, 판매하는 도매상이 밀집해 있었는데
최근 들어 제빵, 제과, 초콜릿 재료를 판매하는 업체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방산종합시장 A동을 중심으로 밀집해 있는 제빵 재료 전문점들은 10여 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업체 중 하나인 진진상회 관계자는 “불과 5~6년 전만 해도 도매가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소매와 도매 비율이 반반입니다”라며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을 가진 손님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베이커리카페와 홈베이킹의 인기에 힘입어 최근 문을 연 점포들은 도매보다는 온라인 판매와 소비자 대상 판매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3년째 제과 제빵 전문업체‘베이킹’을 운영 중인 강석민씨는 “어린이부터 할아버지까지 고객 연령층이 점차 다양화되고 있어요”라며
“많은 이들이 선물용으로 홈베이킹을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손님들이 참 착해요”라고 말한다.
그런 탓일까? 제빵 전문 업체들이 가장 바쁜 시기는 밸런타인데이를 앞둔 때라고. 초콜릿 제작은 오븐이 필요 없고 제작도 쉽다.
이 외에도 베이킹파우더가 들어가지 않는 머핀, 브라우닝, 쿠키 등도 초보들이 도전해 볼 만한 DIY 아이템이다.
가격 밀크초콜릿 원료 2.5kg당 5,700원, 머핀믹스 10kg당 2만원
위치 방산종합상가 A동 동편
1 방산시장에는 3년 전부터 제과, 제빵 재료를 판매하는 전문점이 부쩍 늘었다
2 홈베이킹의 유행으로 일반인들도 제과 기구를 많이 찾는다
3 어린이부터 노년층까지 소비자 연령대도 다양해지고 있다
4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사회적 분위기도 DIY 열풍에 기여하고 있다
'맛과 여행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휴가(Episode05) (0) | 2010.08.26 |
---|---|
포항 물회(1박2일) (0) | 2010.08.19 |
낚시꾼이 뽑는 최고의 생선회는??? (0) | 2010.08.13 |
수제닭발(?) (0) | 2010.07.27 |
유명 맛집, 2대를 못 가는 이유 (0) | 2009.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