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대표팀의 졸전과 코스타리카
브라질 월드컵 '죽음의 조'라는 D조에서 최약체로 평가받던 코스타리카가
우르과이 이탈리아에 잇따라 승리하면서 이변의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축구 강국에 맞서 주눅들지 않고, 심판의 편파판정을 뚫고 이겨낸 코스타리카 경기는 그야말로 축구다운 축구였다.
이영표 해설위원도 코스타리카 경기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2002년 4강까지 올라간 한국 대표팀의 그것을 보는 듯 했고 약체팀들이
축구강국과 맞서 어떻게 경기해야 하는가를 코스타리카가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상대 공격수의 돌파를 허용치 않는 촘촘한 수비력과 호웰 캠벨로부터 시작하는
활발한 공격력은 축구 팬들의 매료를 사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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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파 선수들이 많다지만 루니와 호날도, 드록바, 발로테리, 로벤 등의 이름세에 비해 비중이 높지 않는 코스타리카는 '즉음의 조' 뿐만 아니라 참가팀 전체에서도 이란과 카메룬에 이은 최약체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뚜겅을 열어보니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최고의 경기는 코스타리카였고, 정작 조편성에서 가장 유리하게 배치된 한국 대표팀은 최악의 졸전을 펼쳤다. 알제리와의 경기에 3:0으로 밀리고 있는 지금 이 시각, 이 글을 쓰는 와중에 한국 대표팀이 알제리에 4:2로 대패한 TV 화면이 비춰지고 있다.
비록 차범근 만큼의 해외파 활약은 아니었지만 히딩크 감독이 차출해 큰 성공을 이룬 박지성 이영표 당시의 한국 대표팀 성적이
우연이 아님을 알제리와의 졸전이 보여주고 있었다.
이영표 박지성, 김남일 등이 활약한 한국대표팀과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 홍명보 감독의 대표팀이었다.
그러나 한국축구가 언제까지 히딩크 때만을 노래하고 박지성 이영표에 미련을 가질 수 없는 법,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으면하는 바램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축구가 2002년 히딩크 때와 확연하게 비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코스타리카의 선전과 비교해 보면 더욱 더 확연하다.
10명의 모든 선수가 공수를 넘나드는 지치지는 않는 체력 단련을 위해 홍명보 대표팀이 무엇을 해왔는지,
신구의 조화 없이 경험이 짧은 젊은 선수들로 채운 홍명보 호가 과연 옳았던 것인지,
상대 전력에 대한 분석에 있어 정성이 과연 있었는지,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축구 강국과의 평가전도 마다하지 않던
히딩크 때와 왜 다른 지금인지, 남아공 월드컵의 16강 진출에 안주하고 자만한 축구협회가 아니었는지
되묻고 싶은 심정은 이미 러시아와의 경기에서부터 일어났다.
러시아와의 경기에 대해 언론들은 한국 대표팀에 대한 혹평을 주저했지만
정작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이미 외신들의 부정적인 평가와 같이했다.
알제리 대표팀을 만만하게 여기는 시선의 흐름도 불안의 요소였다.
아니나 다를까, 러시아에 비해 알제리가 더 만만치 않았고 한국 대표팀의 대응이 거꾸로임을 증명했다.
이겨야할 러시아에겐 몰아붙이지 못했고, 알제리를 만만하게 본 태도로 역습을 당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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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어느 팀이든 10명의 모든 선수가 전천후로 뛰는 전력이 되어야 하지만 2002년과 비교해 떨어지는 전력이라면 상대팀 분석이라도 정성들여 파악하는 정확함이 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든다. 알제리가 아프리카 대륙의 나라라지만 나이지리아 카메룬과 달리 유럽 선수의 체력과 가까운, 축구 천재 지단을 배출한 멘탈의 나라임을 간과한 것이다.
홍명보 감독의 불통 행보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소신 없이 이리 저리 휘둘린 포퓰리즘적 모습도 발견되었다. 무엇과 소통해야 하고 무엇에 흔들리지 않는 소신을 펼쳐야 하는 지에 대한 행보에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월드컵을 내다보고 경험 부족의 젊은 선수들로 채웠는지 모르겠지만 올림픽에서의 동메달 성적에 경도되어 지나친 자신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신구조화를 위한 경험 많은 선수도 선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통의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홍명보 없는 히딩크의 4강이 있을 수 없듯 수비 진영에서만은 경험 많은 노장 선수 선발도 고려해야 했다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다음 월드컵을 위해 장기적으로 내다보는 선발일 수 있다. 그러나 축구협회는 홍명보 감독의 감독 임기를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보장하지 않았다. 감독 취임 또한 본선 1년을 앞두고 선임되어 조급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장기적인 플랜을 보장하지 않는 축구협회라면 그런 플랜이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단기적인 융통성이 필요했다. 그 반면 장기적 플랜의 홍명보 감독을 바란다면 이 번 성적으로 비난할 이유는 없다
홍명보 감독은 또한 기성용 선수의 트윗 파문에서
기성 언론들의 지나친 트집에 너무 휘둘리지 않았는가라는 의문의 소신 없는 모습도 보였다.
기성용 선수의 사기를 생각할때 불필요한 경고로 보였다.
이는 홍명보 감독이 기성 주류언론의 프레임에 좌우되는 제도권의 한계에 갖힐 수 밖에 없는 한계성으로 보였다.
축구협회와 주류언론 등의 프레임에 휘둘리지 않는 홍명보 감독을 위해 우리 사회가 도우지 않는 한, 홍명보 감독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2002년에서 이뤄낸 국민적 화합의 열기나 그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다.
월드컵 이후의 축구 인프라를 위해 축구협회가 무엇을 했는지도 모를만큼 일회성이었다.
4강을 이뤄낸 기술적 노하우를 승계하기는커녕 계파적 보수성의 한계로 잊혀지거나 '편파판정'의 4강이라며 부정하기까지 했다.
붉은악마 응원단의 저항 정신이나 순수함도 지금에선 관이 주도하거나 상업적으로 변질되는 등 초심을 잃었다.
운동권의 노래나 저항 정신의 힙합과 락 음악도 담아낸 붉은 악마 앨범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민주투쟁이라는 말만 해도 종북이라고 노래하는 보수수구정권의 영향력과 과연 무관했을까?
축구대표팀에 대한 디테일한 비판이나 여론 형성이 되지 못한 것도 인터넷 소통 문화를 짓눌렀던 수구보수정권의 영향력과 무관했을까?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또한 2002년의 월드컵과 대선에서의 시민적 열기를 지속적으로 승화하지 못하고
자기부정을 했다는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남은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16강 진출의 여부와 관계 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패배를 하더라도 후회 없는 경기의 최선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다음 대회에서의 한국축구는 어둡지가 않다
브라질에서는 지금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월드컵 대회에 쏟아부은 비용에 따라
소외된 빈민촌의 불만과 시민들의 반대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한다.
국내에서도 월드컵 경기에 대한 응원에 대한 따가운 시선도 있다.
그럴 여유도 없을 만큼 국내의 정치 사회 문제가 심각하다.
다만 축구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경기력 측면에서 풀어보았지만 월드컵 뉴스에 지나친 편중으로
모든 문제를 덮으려는 방송사들의 보도 태도는 시정해야할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