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가와, 차범근 이후 최고의 아시안 스타플레이어에 대한 기대
1. 아쉬운 박지성
박지성팬들에게는 아쉬운 얘기다.
그러나, 팩트 중심으로 보고, 축구 중심으로 보면 아쉬움을 견뎌낼 수 있다.
박지성은 맨유에 올 때부터 주전급 이적료를 받고 온 건 아니었다. 아직 스타가 되기 이전이
었던 호날두와 나니가 1900만유로와 1500만 유로를 받고 왔는데, 박지성이 400만을 받았으
니 차이가 크다.
박지성이 1년 더 있다가 첼시 가보라는 히딩크 권유를 뿌리치면서 맨유로 행했던 것은 박지
성 특유의 도전 정신 때문일 것이다. 박지성 판단이 옳았는 지 사후 평가야 할 수 있는 일이지
만, 한국 축구 선수에게는 기대하기 힘든 사건이 터진 것이므로 이에 대해 박지성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전에 차범근 조차도 처음에는 분데스리가에 갓 올라온 2부 리그 출신 팀에 몸담았고, 차범근
이 유럽리그 우승팀을 들어올렸던 레버쿠젠도 당시 하위팀에서 중위팀으로 발돋음했던 팀에
불과했었다. 그런데 유럽 정상급 팀이 오퍼를 냈으니 박지성이라고 정신이 있었겠는가?
다, 유럽 경험이 일천한 데서 비롯된 일이다. 하지만 수년 전의 박지성을 그대로 답습하여 아
스널에 가서 망가져간 박주영은 욕 먹어도 어쩔 수 없다.
어쨋든 박지성은 적어도 4년간은 경기에 활발히 모습을 드러내며 실력도 늘었다.
드리블링, 킬패스, 속도, 슈팅 등은 늘지 않았다. 그러나 볼컨트롤, 침투, 수비력, 마무리 능력
등은 늘었다.
그러나 박지성의 경쟁력은 초기에 골마우스에서의 저돌적인 돌파에서 중기에는 점차 미드필
드에서의 활발한 움직임(많이 뛴다는 얘기)으로, 그리고 후기에는 수비력으로 점점더 바뀌었다.
그래서 박지성은 자신의 주 보직이었던 레프트윙어로써 좋은 평가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
물론 박지성의 팬들은 박지성의 좋았던 시절의 좋았던 경기 위주로 그를 기억한다. 그것은
모든 팬들의 기억 버릇이다.
박지성의 퇴조에서 결정적인 계기는 9개월에 걸친 부상에 있었다고 본다.
하필이면, 그에게 부상은 연령대로나 출장횟수에서나 가장 활발했던 (우리나이) 27,8세에 찾
아 왔고, 부상에서 회복한 뒤에는 월드컵에 차출되어야 했다.
대표팀 차출과 박지성의 부상의 연관성에 대해 맨유감독과 팀닥터가 했던 얘기들이 당시에
집중적으로 터져 나왔다.
부상 이후와 월드컵 사이에도 그랬지만, 특히 월드컵 이후의 박지성 출장 기록을 확인하기
바란다. 박지성이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직을 사직하고 팀에 전념할 것을 천명했지만, 그의
의지와 달리 몸은 돌아오지 않았고, 출장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박지성은 EPL이 1993년 새로 출범한 이래 맨유의 두번째 전성기를 경험했던, 그래서 전무후
무한 CL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아시아 선수이다. 그는 감독의 전술적 옵션으로써 CL에서 기
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전성기에 조차 그의 몸값은 리그내에서는 300만 파운드,
유럽 차원에서는 700~800만 유로 정도에 머물렀다.
EPL, CL 우승 체험은 소중한 일이지만 선수로서의 개인적 값어치는 그와 또 다른 문제다.
박지성은 그렇게 해서 QPR로 간 것이고, 이는 비정상적이지는 않다.
우리에게는 박지성이 국내 최초의 프리미어리거이자 EPL과 CL 우승팀의 일원이라는 점은
그가 전북이나 제주로 돌아오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팩트이다.
2. 카가와에 대한 높은 기대
카가와는 박지성보다 8년이 어린 선수이고, 일본 축구가 기술와 패싱의 축구로 길을 잡은 후
본격 육성된 새세대의 선두 주자다.
누군가는 그의 볼터치가 거칠다고 하는데, 그건 박지성의 경우를 보아도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에 불과하다. 그뿐 아니라 카가와는 드리블링도 나니나 발렌시아와 비교하면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격형 미들로서의 자신의 보직에서 유럽 수준에 올라왔다고는 평가
를 받고 있다.
카가와의 장점은 미시적 활동에 있다. 그는 나니나 긱스, 발렌시아처럼 골마우스 바깥에서 폭
넓게 움직이면서 골마우스로 공 몰고 돌진해 오는 타입이 아니다. 혹은 제라드처럼 30미터 슛
을 꽂아넣는 재주도 없다.
카가와는 골마우스 부근에서 매우 민첩하고 짧은 패스와 위치선정에 능하다. 그래서 골을 넣
는다. 자신의 보직에서 카가와는 전문성이 있다. 나니와 발렌시아와 애슐리영이 몰아대어
상대편을 울타리에 가두면, 울타리 안에서 골을 만들어 내는 일을 루니와 에르난데스를 도와
서 카가와가 하게 된다. 카가와는 그 일을 잘 한다.
카가와가 긱스나 호날두가 아님은 틀림없다. 그러니 그를 날두식 윙어나 중미로 활용한다면
별 재미를 못 볼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맨유에서 골마우스에서의 미시 전술을 탁월하게 소
화할 전력임은 틀림없다.
하나의 전문성에서 차이를 분명히 드러낸다면 그는 성공한 선수이다.
3. 카가와와 박지성
누구 말처럼 비교가 우스울 수도 있다.
개인 전력에서는 카가와가 우위에 있고, 개인 경력에서는 CL 우승을 경험한 박지성이 낫다고
볼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도 세대가 다른데 비교하는게 좀 그렇다.
그러나 카가와가 맨유의 로테이터라는 턱없는 얘기를 쓰면 곤란하다.
맨유는 더블, 트리플 스쿼드를 보유해야 하는 팀이다. 그래야 우승을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는 맨유의 모든 선수들이 로테이터들이다.
하지만, 로테이션을 하더라도 중요한 경기에 뺄 수 없는 선수들이 있다.
또한 몸값이 비싸서 승리에 대한 책임을 더 져야 하는 선수들이 있다.
카가와는 나니와 호날두의 맨유 이적 당시 연령대에 유사한 이적료를 지불하고 온 선수이다.
이런 선수를 로테이터로 놀린다고? 카가와가 적응하지 못하는 한 그를 단순한 로테이터로 두
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애초부터 주전급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온 선수를 놀리면 팀의 흑자가 어떻게 생기겠는가?
게다가 시장의 규모 차이에도 불구하고 카가와는 어린 나이에 이미 박지성 급에 준하는 주급
을 도르트문트에서 받고 있었고, 아마도 맨유에 와서는 주급이 7-8만 파운드는 될 것이다.
질투심이 심해져서 무리한 추론을 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3. 차범근 이후 최고의 아시아 출신 스타 플레이어에 대한 기대
세계의 정상급 팀인 맨유에서 아시안이 7년여를 뛰면서 200여게임을 출장했다는 것도
아시아의 기준으로는 충분히 레전드가 될 만하다. 그러나 박지성이 맨유의 주전급은 아니었
음도 분명하다.
카가와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것은, 그가 정상급팀이 유망주에게 지불하는 그런 금액에
정상급 팀에 이적되었다는 점이다.
카가와의 높은 가치는 유럽에서는 이미 공인되어 있다.
그는 도르트문트를 리그 2연패에 도달하게 한 가장 핵심적인 공헌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발락이나 베르바토프의 지지부진을 볼 때 카가와가 EPL에서도 오래 성공하리라고
확신하는 것도 섣부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카가와는 차범근 이후 두번 째로 탄생한 유럽 레벨의 선수이다.
그 나이의 다른 유럽의 유망주들과 카가와가 다른 점은 두번의 리그 우승을 그가 '이끌었
다'는 점이다.
여러 약점에도 불구하고, 24살의 전형적인 동양인이 평가기관이나 이적료에서나 유럽 레벨
의 선수로 평가받아 정상급의 팀에 이적된 경험은 없다.
박지성이 그랬듯이 카가와도 언젠가 맨유에서 떠나가면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가 생길 것
이다.
그러나 지금은 카가와의 시대이다. 카가와가 최고의 아시안 스타플레이어로써 각광을 받을
근거도 충분하다.
맨유는 또 이렇게 아시아 시장을 잡아두었다. 그러나 이번엔 개인적 가치와 유니폼 가치가 일
치하는 명실상부한 선수를 잡았다.
일본과 한국 축구시장의 규모의 차이만큼, 그리고 아시아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력의 크기만
큼 카가와 이펙트가 아시아 시장에 생길 것이다.
4. 그렇다고 맨유가 우승을 할까?
맨유는 카가와의 유입으로 공격진에서는 구색을 잘 맞추었다.
카가와는 맨유에서 뚜렷한 쓸모와 차별성을 갖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CL과 EPL에서 우승할 수 있을까?
글쎄다. 카가와의 영입은 맨유의 조직력에 일조할 것이다.
하지만, 카가와는 호날두도 아니고 실바도 아니다.
CL 우승은 확실히 불가능한 쪽에 가까울 것이다.
EPL은 우승할 수도 있다. 지난 시즌도 거의 우승하지 않았었나?
카가와가 전략 강화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맨유가 이전의 영광을 다시 찾으려면
영입은 아직도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