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집 여인의 눈물....
모처럼 한가로운 시간이 생겼다...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멀리
대구의 친구결혼식에 가고 격주로 쉬는 토요일 오전에 혼자 늦으막이 일어나 별다른 할일이 없었다.
주섬주섬 두꺼운 외투를 입었다. 이미 시즌이 끝난 물낚시를 가기로 결정하고 하얗게 서리낀 차유리를 입김으로 녹였다.
초겨울이라지만 꽤나 쌀쌀한 바람에 몸을 움추리며 차를몰아 강화도 수로들을 찾아 나섰다....
한적한 농로 귀퉁이에 차를 세우고 마른갈대사이에 드문드문 보이는 물자리를 탐색하여 적당한 자리에 받침대를 꼿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큰 기대는 일찌감치 접어두었고 그동안
가지못했던 물가의 분위기나마 느끼고자 왔지만 을씨년한 바람만
갈숲을 부비며 흐르고 인적하나 없는 갈대밭에 앉아 대를 드리우는 모습이 조금은 청승맞아 보였다.
물풀삭은 두자리에 찌를 세우고 시린손을 바지주머니에 꼿은채로
의자에 앉아 수면을 바라보니... 가슴 저 바닥끝까지 고요하게
가라앉는 마음이 너무도 평온했다. 이런 정리된 마음을 얻으려
낚시를 다니지만, 철지난 물낚시의 새로운 맛을 느꼈다..
시간이 흘렀다......
미동도 하지않는 찌에서 눈을떼어 푸른하늘을 바라보고 확트인
시야에 저멀리 철새의 무리가 날아가는 모습도 보였다..
등받이를 뒤로 젖혀 누웠다...
눈을감고 하늘과 바람.... 땅과 물의향기를 함껏 가슴속깊이
들이마시며 나와 자연의 일체감에 취했다..
그사이 2칸반대의 찌가 솟아오르다 널부러져 있었다.
서둘러 챔질하고 보니 손바닥만한 토종붕어...
참으로 오랫만에 보는 붕어의 모습은 그빛깔과 모양새가 이뻤다.
뻐끔거리는 주둥이에 입맞춤을 해주고 조심스레 물가에 놓아주었다.. 몸도 녹이고 시장기도 달랠겸 가까운 식당을 찾아보기로
하고 논둠벙을 걸어 큰길로 나왔다. 조금만 재를 돌아 언덕밑으로
허름한 식당하나가 눈에 띄었다..
전형적인 시골 주막처럼보이는 식당의 마당엔 빨래가 널려있는것
으로보아 그다지 손님이 많은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나름대로의
투박한 음식맛을 느낄수 있을것 같아 그곳으로 향했다...
식당의 낡은 유리문에 쓰여진 해장국이란 벌건 글씨처럼 얼큰한
국물냄새에 시장기가 더 도는것 같아 얼른 눈을열고 들어갔다.
식당안에 조그만 연탄난로가 놓여있고 합판으로 막아놓은 주방과
벽에는 음식메뉴판과 오래된 달력에서 오린것같은 수영복입은
여자사진몇개가 걸려있었다. 주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주방에서
손을 닦고 나와 엽차한잔을 식탁위에 올려 놓았다.
수염을 몇일동안 깍지 않은듯 투박한 얼굴이 식당과 어울린다고
생각이 들었다..
별다른 메뉴가 없는듯 두말없이 해장국을 뚝배기에 담으러
주방에 들어갔다. 그때 식당문을 열고 한 여인이 머리에 쟁반을
이고 들어왔다....
" 이런 무슨 여편네가 뭐하다가 이제 오는겨? " 주방에 있던
사내가 소리를 질렀다. 아무소리 하지않고 음식배달을 갔다온듯
그여인은 머리에서 쟁반을 내려놓았는데 그순간 나와 눈이마주쳤다.
" 헉! "
나와 그여인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얼어버린듯 서로를 그렇게
쳐다볼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분명히 슬기였다.... 슬기를 다시 만나게 될줄이야 상상도
못했지만 그녀도 놀란빛이 역력해 보였다....
그때 주방에서 사내가 해장국 한그릇을 가지고 나왔다.
나는 얼른 눈을 돌리고 엽차를 마셨다. 그녀도 남편인듯한 사내가
눈치를 챌까 주방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나는 해장국을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르게 연거푸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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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나의복장을 보고 알았는지 낚시를 왔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나의 건너편의자에 앉아 말을하고 싶어했다.
"요즘은 날이추워서 잘 안나올텐디요?" "한달전만 해도 요앞
수로에서 월척한 사람들도 있었는디..." 하하하"
" 어데다가 낚시대를 담궜는겨?" 사내는 특유의 비릿한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 아...예, 저아래 둠벙지나서 새물들어오는 자리에....."
사내는 나보고 그곳이 제일 잘나오는곳이라 하며 자기도 낚시를
좋아한다고 해장국을 다먹을때 까지 쉬지않고 말을이었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일어났다. 사내는 다음에도 꼭 들러달라며
호탕하게 인사를 했지만 나는 주방쪽의 슬기를 흴끗보았다..
그녀도 나를 곁눈질로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그릇을 씻는듯했다..
나는 다시 논두렁을 지나 수로까지 걸어오면서 수많은 그녀와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처음그녀를 보았던 나의 암울했던 학창시절 지하실월세방에
살았던 기억을 떠올려야 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동업자의 사기로 인한 가사가 기울어져
중학교시절 부터 우리는 신월동 어느 달동네에서의 생활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당시 지하실에 우리처럼 어렵게 생활하는 8가구가 벽하나사이로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화장실과 세면장은 공동으로 사용했으며
모두들 나름대로의 사연으로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음을 알았다.
그당시 이사를 오고 떠나가는 일은 한달에 한두번꼴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라 그들에게 일상처럼 만남과 이별을 너무도 쉽게
받아들이게 만들었던거 같았다..
그처럼 그들은 남에게 쉽게 정을주거나 혹은 쉽게 미워하는일이
없었고 아침에 가벼운 인사정도로 이웃을 대했다..
그러던중 또다른 한 세대가 이사를 온거 같았다.
원래 이사를 하는동안 시끄럽고 번잡하여 방안에 있기가 싫어서
가까운 방화동 작은저수지에 낚시를 갔었다.
그당시 서울시내에도 크고작은 저수지와 수로가 많았던것으로
기억되어 휴일이면 자전거뒤에 낚시대와 장비를 실고 종종
토종붕어 몇수씩을 올리곤했다.
그렇게 몇마리의 붕어를 잡아 집에 돌아오니 날이 어두어지고
남동생과 나는 잡은붕어를 손질해서 무우와 고추가루를 듬뿍넣은
매운탕을 끓여 저녁을먹었다.. 그리고 저녁먹은 설것이를 하러
세면장에 가니 그곳에 누군가가 열심히 그릇을 씻고 있었는데
단발머리에 짧은티와 반바지를 입고서 나를 쳐다보았다..
순간, 나는 그릇을 든채로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다..
참으로 이쁘게생긴 그여학생은 바로 슬기였다...
나보다 두살어린 중학교2학년이었던 슬기는 나이보다 훨씬 성숙해
보였다. " 그설것이 이리로 줘요" 이왕하던김에 내가 같이할테니"
그녀는 내손에서 설것이 그릇통을 뺏아 그릇을 씻었다...
나는 당황스러워서 어찌할바를 몰라 엉거주춤 서있었다. 그녀는
그럼 자기집에 몇가지 선반을 달 못질을 부탁했다. 나는 집에서
망치와 못을 가지고가서 몇군데 선반과 액자를 달아주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슬기네 집안역시 한순간에 몰락하여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는 원양어선을 타고 일을하셔서 가끔 생활비를
통장으로 보내주는 정도로 집안살림은 슬기가 도맡아 할수밖에
없는 형편임을 알았다..
너무도 비슷한 환경이었다. 나역시 아버지는 멀리 강원도 도로
공사현장에 막일을 하시러 떠나셨고.. 어머니는 지병으로 외갓집
에 요양차 내려가셔서 동생을 데리고 힘든생활을 꾸려야 하는
점이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었던거 같았다...
그후로 슬기는 나를 오빠라부르며 참으로 잘따랐다....
가끔답답할때면 사람들 눈을피해 옥상에 올라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서로의 어려운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아침에 동생과 나의
도시락까지 슬기가 싸주지까지 했다...
언제나 깔끔한 그녀의 교복과 하얀목을 두른 깨끗한 깃에서
그녀가 얼마나 부지런하고 착한마음을 가졌는지 짐작할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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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겨울 눈이 수북히 내리던 밤에 그녀가 찾아왔다.
입술이 파랗게 질리고 눈과 얼굴은 온통 눈물로 젖어있었다...
"슬기야 왜그래?" "무슨일이야?" 나는 다급히 물었다..
그녀는 몸을떨며 가깟으로 말문을 열었다..." 오빠, 우리아버지
가 많이 다치셨나봐. 지금병원에 계신다고 전화왔었어..."
나는 그길로 그녀와같이 병원에 갔다. 중환자실 문앞에 써있는
아버지의 이름을 확인한 슬기는 그자리에 주저앉아 울기시작했다.
슬기아버지는 원양어선 기관실에서 근무를 하시다 아마도 기관실
열동력장치 수리도중 커다란 시설물이 주저앉는 바람에 허리와
다리를 다치셨다고 들었다.. 정말로 안타까웠다...
병원비와 얼마간의 보상금이 나왔다.. 하지만 그것으로 슬기가정
의 앞날이 보장되지는 않았다.
그후로 슬기는 거의 병원과 학교로만 다녔고, 나는 그녀의모습을
볼수가 없었다... 가끔병원에 들러 슬기아버님을 병문안 갔었지만
슬기는 잘볼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를 한번이라도 볼수있을까
하는마음에 슬기가 다니는 여학교 교문을 서성거리기도 하고
그녀가 잘다녔던 만화가게도 기웃거려 보았지만 그녀는 단한번도
만날수 없었다.. 나는 지금껏 그처럼 누구를 그리워한적이 없었다
그러한 감정이 첫사랑이라고 지금은 생각할수 있겠지만 당시의
나의 감정에 대해 화가날정도로 그녀에대한 나의 집착을 떨칠수가
없었다...
그러던중 공사일을 마치고 강원도에서 아버지가 올라오셨다.
다행히 전에 동업자였던 친구분에게서 얼마간의 돈을 회수하셨
는지 아버지는 다른곳으로 이사를 가자고 하셨고, 동생과 나는
지하실단칸방의 암울한 생활을 끝낼수 있었다...
이사가기전날 굳게 자물쇠로 닫혀있는 슬기집문을 바라보며
눈물이 핑돌았다.. 혹시나 집에 돌아오면 편지를 하라고 누가볼까
조그마한 종이에 이사갈집의 주소를 적어 문틈사이로 밀어넣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곳을떠나 새로운집에 정착을 했고 어머님의건강
도 많이 좋아지셔서 모든식구가 같이 살수있게 되었다...
그러한 되찾은행복을 느끼며 생활을했지만 슬기를 생각하면
가슴한편에 서늘한그늘이 항상자리잡혀 있었고 연락조차없는
그녀에게 무슨일이 있는지 무척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나는 내나름대로의 학교생활과 공부를 하는동안 점점 그녀의기억
은 퇴색되어 가는것 같았다.. 어느덧 대학에입학하여 다양한
생활과 시간을 보내는동안 나는 아마도 슬기를 잊은듯 했다..
그런데 어느날 군대가는 친구녀석송별식을 하느라 같은과 학생
들과 술자리를 갖고 2차로 주점을 찾으러 영등포대로변을
몰려가던 도중 나는 술취해 흐릿한 눈으로 슬기를 발견했다.
순간 그자리에 멈쳐서서 혹시나 하는마음에 눈을부비고 다시한번
보았다...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네온사인에 비춰진
그녀는 예전의 깔끔하고 단정한 여학생 슬기의모습이 아니라
어깨너머까지 퍼머를 한 머리에 빨간짧은 스커트를 입고 굽높은
구두를 신은모습에 짙은화장까지하고 더군다나 그녀의 옆엔
술취한 중년남자가 그녀의 어깨에 팔을올리고 비틀대며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앞에 얼어붙은듯 서서 그녀에게 낮은소리로 말했다..
" 슬기야... 나야.. 오빠야..." 슬기는 고개를 숙이고 걷다
나를 올려보고는 생글거리며 웃던표정이 순간 굳어지는것을
보았다. "누구신지 잘모르겠네요..." 그녀는 얼른 고개를돌리며
나를 비켜지나갔다.... 나는순간 술기운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화가났던것인지는 모르지만 슬기의 팔을 잡아 거의
끌고가다시피 그자리를 벗어났다.
뒤에서 친구들과 술취한 중년남자는 멍하니 나의모습을 지켜
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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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에서 그녀의 모습을 가까이 보았다..
어떤말도 서로 꺼내기가 두려웠던 것일까? 커피가 모두 식을
때까지 그렇게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내가 말문을
열었다.... " 슬기야 왜 연락을 안했니?..."
그녀는 핸드백을 열어 담배를 꺼내 입에물고 가늘고 하얀
손가락을 움직여 라이터에 불을부쳤다.... 그녀가 한숨같은
연기를 내품고 나를 쳐다보았다...
" 오빠 .... 내모습이 우습지..." " 하하하하" 그녀의 웃음뒤에
슬픔표정까지 내비쳐진 모습을 나는 놓치지 않고 보았다....
도대체 네가 왜 이렇게 되었니.. 그착하고 곱던 네가?..
나는 속으로부터 밀어오르는 수많은 말들을 참으며 다시 말을
건냈다.
"슬기 아버님은 건강하시구?"
슬기는 더이상 말을 하기싫다는 표정으로 바쁘다며 일어서겠
다고 했다.... 나는 나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그녀에게 전해
주고 그렇게 서글픈 재회를 마쳐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전처럼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지금 과연,어떻게 도움을 주고 무슨일을 해줄수
있는것도 아닌데... 나의 안타까운 마음은 점점 더커져가는것을
느꼈다.. 나는 내 나름대로의 생활에 쫓기여 서클활동과 공부를
하는동안 또다시 무덤덤해지는 그녀의 존재를 기억저편에 남겨
두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밤 슬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잠을자다가
받은 수화기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슬기가 분명한데 발음을
흘릴정도로 많은 술을 마신 목소리였다...
새벽 2시...... 나는 부랴부랴 옷을입고 그녀가 있는곳으로
택시를 타고 달려갔다.
어느 허름한 주점의 구석에 혼자앉아서 나에게 손짓을 하는
그녀앞에는 이미 널부러진 소주병만 2병이 있었다..
얼마간 나는 그녀가 술잔이 넘치게 부어주는 술을 연거푸마시고
별다른 말없이 그녀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 오빠........ 나 너무 힘들고 지쳤어..." 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슬기야 얼마나 힘들었겠니..."
그곳에서 그녀가 살아왔던 모습들을 들을수 있었다.
슬기는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고 치료와 학교생활을 하기가
벅차 학교를 그 다음해에 자퇴했다고 했다. 그리고 식당에서
일하고 공장도 다니면서 아버지의 병간호와 동생의 뒷바라지를
했었고 ... 그러다 결국,중상의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하시고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친척하나 없는 슬기와 동생은 참으로
힘들게 살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동생만큼은 꼭 잘가르키고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싶어
슬기는 자신의 인생을 이미 포기했었다고 말했다....
슬기가 18살 되던해 그녀는 이미 술집과 향락업소에 일하게
되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활을 하고 있다고 푸념어린 말을
이어갔다.. 나는 왜 그당시 연락을 하지않았냐고 물었다..
슬기는 자기 자신만 힘들면 될것을 나한테까지 힘들게 만들기
너무 싫었다고 답했다...
그후 나와 그녀는 자주 만났다...
가끔 찻집이나 극장... 아니면 변두리 주점에서 옛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많은 얘기를 나누고 당시의 해맑은 미소를 다시볼수
있어서 너무도 반갑고 즐거웠다. 흰눈이 펑펑 쏟아지는 거리를
거닐며 나의 외투주머니속에서 작은손을 녹이며 미소짓던 그녀의
모습은 나의모든 마음을 가득 채워주고 있었다..
그동안 그녀에게 나는 꾸준히 편지를 보냈다... 만나서 못할
말들을 한밤중에 정리해 한줄한줄 써내려가며 그녀를 떠올리는
일은 나에게 너무도 소중한 일과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봄이되고 따스한 초여름날 나와 그녀는 야외로 나가기로
약속을했고 나는 오랫만에 낚시장비를 챙겨 안산의 금광저수지로
그녀와의 낚시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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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수중좌대에 올라 잔잔한 수면에 낚시대를 드리우고,
그녀와 단둘이 앉아 달콤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
슬기는 오래전 그모습으로 쌀을씻어 밥을짓고 나는 어부가되어
연신 붕어를 잡아올렸다....
어느덧 해가기울고 산속에 자리잡은 금광지의 밤하늘의별들은
참으로 빨리 그모습을 드러냈다..
밤안개가 좌대밑으로 흐르고 수면을 자욱히덮어 마치 하늘저편
구름위에 떠있는 쪽배처럼 넘실대는 좌대에 그녀와나는 서로
기대어 촘촘히 하늘에박힌 아름다운별들을 세며 아스라히 멀어진
그시절로 돌아가 순수하고 그윽한 웃음으로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의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잠든듯했다. 나는 그녀를
좌대의 방안에 뉘이고 아직은 차가운밤공기인지라 담요를 덮어
주었다.. 잠든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의 감은눈에 짙은속눈썹은 아직도 변함없이 짙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포시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마추고
새벽이오는 저수지를 바라보며 그렇게 짧고도 아쉬운 밤을 보냈다
저멀리 저수지의 물결이 산기슭에서 타고 내린 새벽빛을 토해내듯
무엇인지 모를 나의 마음깊은곳에 잔잔한 파동이 일렁거림을
느낄수 있었다...
그후론.....
온통 그녀에대한 나의사랑이 커다란 파도가되어 다가옴을
거부할수 없었다..슬기는 조금은 한발자욱 물러나서 나를
대했지만 나에대한 그녀의 감정또한 조금씩 깊어짐을 느낄수
있었다... 그러던중 나는 그녀와 결혼을 하기로 결심을했다..
그녀의 과거와 걸어온길 그리고 그녀의 깊은아픔까지 포용할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뜻을 그녀에게
전했다..
하지만 슬기는 차가운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도안되는소리
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는 나의진심을 전하기 위하여 끈질긴설득과 노력을다했다
그러자 그녀의 마음도 조금씩 나에대한 사랑을 점점 믿게되었다.
나는 부모님께 슬기를 소개시켜드리리라 결심을하고 집으로
그녀를 초대했다. 처음엔 부모님도 그녀를 참하고 이쁘다며
잘사귀어 보라고 하셨다. 그녀의 과거를 궂이 말씀드릴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어 더이상의 슬기에대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후 슬기와 나는 서로 미래를 설계하며 거의 같이 붙어다녔고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다시는
너를 보내지 않고 지켜주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어느날 어머님은 그녀를 따로 만나셨다..
나름대로의 이상한점을 많이 발견하신 어머님은 그녀의 부모와
일가친척하나 없다는사실에 슬기의 과거와 현재의 생활을
집중추궁하셨던 것이다. 그날저녁 나는 부모님과 난생처음
양보할수없는 길고긴 언쟁을 벌렸고 나도,부모님도 한치의 양보
없는 결말로 치닫고 있었다.. 결국, 나는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까지 하며 대충의 짐을싸고 대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슬기가 묵고있던 자취방을 찾아갔으나,그녀는 보이질
않았다... 방안에 어지럽게 널려진 몇가지의 옷들과 짐들로보아
그녀가 떠났다는것을 직감적으로 알수있었다..
나는 그길로 대로로 뛰쳐나와 그녀를 찾기 시작했다.
아마도 영영 다시는 못볼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이 되도록
버스터미널로 기차역으로 쉴새없이 뛰어다니며 그녀의 모습을
찾았으나 모두가 허사로 돌아갔다...
나는 그후 몇일동안 거리를 방황하며 정신나간 사람처럼
돌아다녔다.... 뒷모습이 비슷한여자를 멈춰세우기도 수없이....
하지만 슬기의 모습은 찾을수없었고.. 몇일간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잠도제대로 자지못한 상태에서 심한독감까지 앓아
도심의 어두운 뒷골목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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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나는 어느병원 사방이 하얀색
으로 회칠한 병실에서 눈을떴다... 침대옆 난간에 머리를 숙이고
잠든 어머님의 모습을보며 참으로 목으로 꾸역꾸역 올라오는
울음을 참았다. 이젠 체념이라는 단어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는 것이 못내 가슴을 아프게 했지만 그보다 이젠 다시 슬기를
볼수없다는 사실과 못난아들때문에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리신
어머님의 모습이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그렇게 한동안 말을잃어버린 사람처럼 멍하니 세월을 보냈고..
학업생활도 지지부진하여 휴학계를 내고 군에 입대하여 버렸다
단순하고 규칙적인 군생활은 다소 번잡한 상념을 떨쳐버리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것 같았다. 군생활을 하는동안 나의 깊은상처
는 어느정도 치유되는것을 느꼈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큰 선물은 망각이라고 했던 어느철학자
의 말이 상당히 가슴에 와 닿았다...
어느덧 군을 제대하여 복학하였을때 잃어버린 나의미래에 대한
열정과 기대감에 상당히 노력했음을 기억한다.
그렇게 그녀에 대한 기억과 사랑은 시간과 망각의 풍화작용으로
조금씩 아련한 추억의 페이지로 남게 되었다..
사회에 진출하여 치열한 삶의 현장에 부딫기며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정신없이 살아온 세월동안 단한번도 슬기를 생각하지
못한건 아니였다..
그녀와 걷던 경복궁의 오솔길과 눈이 펑펑 내리는 찻집창가에
앉아 미소짓던 하얀얼굴이 문뜩 문뜩 떠오를때면 혼자 실없는
미소를 입가에 떠올리곤 했다.
단지,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던... 행복하고 축복된삶을
살길 바라는 작은기원밖에 줄수없었다.
그렇게 나의젊은시절을 온통 선홍빛 사랑의아픔으로 물들게한
그녀를 나는 오늘 보았다...
해장국집을 나와 대를폈던 물자리까지 오는동안 흑백필름처럼
뇌세에 스치고 지나가는 그녀와의 추억들은 너무도 생생하고
가슴뛰는 흥분으로 다시금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담배한대를 피워물고... 흥분을 가라앉혔다..
바늘에 달아놓은 지렁이는 마치 물에젖은 실타레처럼 늘어져
싱싱한놈으로 바꾸어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다.
초겨울의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어스름을 몰고 왔다...
나는 상당한 갈등에 빠졌다...
이제 다시 슬기를 만나 무슨말을 할수있을까?
나를 용서해달라고 한들 그게 무슨소용이 있을까.... 차라리
엇갈린인연은 영원히 만나지 않는것이 좋았을것을 참으로어이없는
끈끈한 인연.....
하지만 너무 궁금했다.. 어떻게 살아왔을까? 아까 그 투박한사내
가 남편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후미진 시골의 농로옆에서
살고있을까.....
나는 서둘러 낚시장비를 챙겼다. 내심 다시한번 슬기의모습을
봐야겠다는 마음에 대충짐들을 가방에 쑤셔넣고 차 트렁크속에
던져넣었다.. 한적한 둠벙길을 따라 차를 몰아 큰길까지
나오면서 그녀를 어떻게 만나야할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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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좁은 농로길을지나 산모퉁이를끼고 구부린 도로위로 올라
천천히 달렸다... 얼마지나지 않아 찻길아래로 해장국집 간판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차를 멈춰세워 한참을 생각했다.
이대로 지나쳐야 하는것이 옳은것인지... 아니면 그토록 마음
한구석에 끝내 접어두었던 추억의 한부분을 다시 일깨워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것인지....
결국, 나는 차문을열고 나와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스름한 저녁그늘이 마당에깔린 허름한 식당유리문엔 벌써
전등불이 켜지고 손님이 없는듯 조용했다.
나는 웬지모를 긴장감에 발소리를 죽이며 식당문앞을 기웃거렸다.
조금열린 유리문틈으로 눈을붙혀 식당안을 겨우쳐다볼수 있었는데
식당테이블앞에 앉아있는 슬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바구니에 담겨있는 파를 다듬고 있는듯 조용히 머리를 숙이고
무표정한 얼굴로 작은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나는 울컥 눈물이 나오는것을 참으며 처음만난 그때의 해맑던
소녀의 모습을 생각했다...
설것이 그릇을 빼앗으며 빙긋이 웃던 그날의 슬기의 모습과는
사뭇다른 느낌에 괜히 서글픈마음이 들었던 것일게다.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나의어깨를 짚었다..
험상굿게 생긴 그 사내였다..
" 여기서 뭐하는 거유? " 사내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무척당황스러워 아무말도 못하고 그렇게 서있었다.
사내는 어디서 술을 한잔걸쳤는지 입에서 고약한 술냄새를
풍기며 자기와 얘기를 하자고 하며 나의 소매를 잡고 어딘가로
걸어갔다..
식당뒷켠의 작은길을 따라 조금내려간후 허름한 매점앞의 평상에
걸터앉아 사내는 매점에서 사온 소주를 내려놓았다.
이빨로 병마게를 따고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부어주며 마시라고
권했지만 내가 사양하자 사내는 단숨에 소주를 입에 털어넣고는
나에 대해 물었다... " 오후에 온 손님 맞지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슬기와 나의 과거의 인연에 대해 하나씩
말을 할수밖에 없었다.
나의 말을 전부들은 그 사내는 굳은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 그런일이 있었군유....." "지가 오후에 손님을 유심히 봤시유?"
" 아무래도, 우리 안사람과 아는사람이라고 생각은 했지유..."
" 그리고... 안사람 이름이 슬기라는것도 이제 처음 알았내유.."
사내는 말을 흐리더니 내손을 잡고는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순간 영문을 몰라 당황했다.
그리고 사내에게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그사내는 식당에 음식재료를 팔러다니는 장사치로 일했었고
3년전 어느 강원도 식당에서 슬기를 처음 보았다고 했다..
당시 그식당에서 일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착하고 순박해서
여러번 만난끝에 결혼을했지만 그녀가 정신적장애를 가지고있다는
것과 기억상실증 환자라는것 때문에 그동안 그녀의 신상에대해
아는것이 없었다고 했다..
그녀가 한동안 병원과 보호소에서 지내다가 강원도 식당에서
일한지는 그사내가 그녀를 만나기 2년전이였는것이 그사내가 그녀
에 대해 아는것의 전부라고 했다
나는 견디기힘든 슬픔이 다시몰려왔다...
결국 이렇게 살아갈수밖에 없었던 슬기에대한 죄책감에 어둠이
내린 밤하늘만 올려다 보았다..
사내는 참으로 생김새보다 착하고 맘이 고운것 같았다.
그녀가 자기때문에 아직도 고생을 많이 한다며 슬기에대한
따뜻한 베려가 엿보이는것 같았다..
그래도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녀도 또다른 누군가에 의지하며 살아갈수있는 생활을 한다는것
과 마음따뜻한 사람곁에서 작은행복을 느낄수있기를 바랄수있는
기대감이 있다는것이 일말의 나의변명으로 남게되었음을...
나는 그사내가 그녀를 한번 보고가라고 붙잡는것을 사양했다.
오히려 슬기를 만나면 더욱 가슴아린 추억이 될것같다는 생각이
들을것 같았다..
해장국집 문앞에서 사내와 인사를나누고 돌아서려는순간 유리문이
열리며 그녀가 밖으로 나왔다...
사내와 나는 그자리에 서서 한동안 멍하니 슬기를 쳐다보았다.
사내는 슬기에게 말했다..
" 이봐.. 이사람 몰라? 당신 하고 잘아는 사람이래..."
" 자세히 한번 봐봐!"
슬기는 고개를 돌려 나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한동안 나의눈에
시선이 머물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말문이 막혀 도저히 그자리에 있을수 없었다.
서둘러 차에올라 시동을 걸고 차를 몰아 그곳을 빠져나왔다..
한참을 달렸을까......
어두운 강화의 찬바람이 굽은도로가의 갈숲에 부딫겨 소리내어
흐르고 소나무숲의 그림자만 헤드라이트 불빛에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정신없이 달리던중 나의볼에 눈물이 흐르는것을 느꼈다.
나는 알았다...
그녀가 나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한참을 바라볼때....
그녀역시 눈가에 눈물이 맺혀져 있었음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