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초같은 아내
언제 부터인지 나의 주말스케줄은 거의 낚시 외엔 모두 취소를
하거나 가끔 친구나 친지 경조사엔 어쩔수없이 얼굴도장만 찍고
도망치듯 빠져나오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동창모임이나 친구들과의
주말모임을 참석한다는건 왠만한 천재지변이 아니면 거의
불가능 하다는것을 이미 친구놈들이 더 잘알고 있었다.
모여서 웃고 떠들고 술잔을 돌리는 분위기와 세상살이를 이야기
하는 자리 또한 무척좋아 하는 성격이지만 무성한 갈대숲 사이로
자욱히 깔리는 물안개 속으로 대를 드리우고 희미한 케미 빛을
바라보며 시큼한 수면의 향기를 맡고 싶고픈 욕망이 더욱더
간절한것임은 어쩔수 없는일이다.
친구놈들은 하나둘 제각기 짝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애도 하나둘
낳아 정상적인 인생의 순차를 밟아 갔지만 시간의 공간을 모두
물가에 앉아 소비하는 나로서는 여자를 만나 사귀고 결혼까지
골인할 자신이 도무지 없어서 애당초 여러번의 소개를 거절도
했었다. 서른을 훨씬넘은 나이에 고민이 없던 것도 아니지만
나의 낚시 역마살을 운명처럼 받아 들여야 했다.
그러던중 친구놈과 같이 효천지로 출조약속을 하고 다음날 새벽
약속장소로 나가보니 친구놈 안사람과 그옆에 후배라며 웬 여자
가 있었다. 월레 나는 낚시터에 여자를 데리고와 히히닥 거리며
온갖소음과 신경거슬리는 행동(?)을 일삼는 자들을 제일 경멸하던
터라 처음부터 무척 화가났지만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하며
처음부터 출조의 기대감을 접어두어야 했다.
물가에 도착한후 나는 우선 여자들이 앉아서 쉴자리, 음식,햇볕을
가릴 파라솔등을 꺼내 아늑한 자리부터 만들어놓고 버너에 불을
붙여 라면끓일 물을 얹어놓고야 대를 폈다.
왠만하면 방해를 받지않도록 그들과 조금 떨어진 후미진 골자리에
2칸 반,3칸대를 펼치고 떡밥을 갰다. 연휴 때인지라 가족과 함께
온 사람들도 많았지만 효천지의 솔밭 자락의 경사진 자리에
자리를 잡았으므로 그런데로 괜찮은 고요함은 있었다.
저수지 전체의 수심중 이곳이 손맛을 볼수있는 적당한 수심을
갖추었다는것을 알고 있지만 낚시할 만한 자리가 몇 되지않아
생자리를 만들어야 겨우 낚시대 2~3대를 간신히 펼칠수 있는
여건이었다. 떡밥을 대추알 만하게 달아 두세번 밑밥을 주고
어신을 기다리던중 후배라는 아가씨가 컵라면을 들고 아슬한
경사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 위험한데 이곳까지 오십니까" 얼른 컵라면을 받아들고
손을 잡아주었다. 식사를 하자고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직접들고 왔단다. 좁은자리를 삽으로 넓게 만들어서 의자를
건네고 나는 큼직한 돌로 임시 좌석을 만든후 정신없이 라면을
먹었다. 그때까지 아무말 없이 먹는모습을 곁눈질로 바라보는
그녀는 이십대 후반이라 보기엔 애틔어 보였고 어깨까지 내린
약간의 퍼머 머리에 하얀 레이스 머리티를 한 모습이
정초해 보였다. " 잘먹었읍니다" 말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나고져
얼른 한칸반대을 펼쳐 낚시를 권했다.
떡밥 을 직접달아 주고 찌보는법 낚시대 던지법등을 알려주고
혹시나 바늘에 찔릴까 주의사항도 얘기해주었다.
그러던중 나의 3칸대에서 입질이 왔다. 반마디 꿈틀하더니
이내 쑥 올린다. 챔질을 하고 보니 6치 짜리 붕어 살림망에
넣을때 까지 첫 조과물을 보며 환하게 웃는 그녀의 볼에
보조개가 있음을 처음 알았다..
-----------------------------------
태어나서 낚시터엔 처음이란 그녀는 무척이나 신기하고 재미있어
하였다.
솔나무 아래로 벼랑같은 후미진 생자리에 단둘이 앉아 햇살에
반짝이는 수면을 바라보며 가끔 살랑이는 바람에 실려온 그녀의
상큼한 향수냄새는 나의 전신을 마비시키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시간은 내리쬐는 늦은 봄의 햇빛을 견디기에
그녀입장에선 무리다 싶어 일행이 있는 솔그늘아래로 장비를 챙겨
이동했다. 친구놈과 그의 아내는 알수없는 미소로 나와 그녀를
흘낏 흘낏보며 가지고온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아마도 친구놈이 마지막 총각인 나를 구제하려 이런 자리를 마련
했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낚시는 완전히 망쳤지만 본의 아니게 맞선을 본것이다.
그후로 주말출조는 항상그녀가 따라 다녔다.
힘든 밤낚시의 지루한 시간(그녀의 입장)과 위생과는 거리가 먼
낚시터에서의 데이트도 참으로 용하게 견디며 나의 낚시병을
진심으로 이해해 주는것 같았다.
이젠 제법 씨알 굵은 붕어의 입질을 파악할수 있을 정도의
낚시 실력도 갖추었고 서로가 낚시에 관한 대화를 나눌정도의
관심도 갖게되었다.
나는 점점 그녀에게 무한한 존경심과 평생 처음 사랑이라는 감정
을 느낀것 같았다.
물안개가 수초를 휘감고 수면의 고요함으로 천천히 흐르는
저수지의 새벽.... 따뜻한 커피를 끓여와 옆자리에 앉아
안개 만큼이나 그윽한 미소를 짓는 그녀는 어느덧 나에게
중요한 존재로 조금씩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제는 짜릿한 찌올림과 물가의 그 신비한 모습에 끌려
낚시터을 찾는다는것 보다 그녀와의 시간에 매료되어 낚시장비
를 챙긴다는것이 맞다고 볼수 있을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그녀는 점점 나보다 낚시에 더 심취해 가는것 처럼보였다.
처음에 징그럽게 생각하던 지렁이도 몸통을 손톱으로 뚝 자르고
바늘에 정교하게 꿰는 솜씨며 항상 그녀의 가방 안에는 낚시서적이
있었고 심지어는 자작찌를 만든다며 하루종일 연락도 하지
않는 날도 있었다.
낚시터에 와서도 전에 손수 밥을 짓고 맛있는 찌개를 끓이던
모습은 볼수없고 대를 펼친후엔 일어나는 법이 없다.
내가 라면을 끓여다 주어야 식사를 겨우 할 정도로
완전히 낚시에 미친것 같았다..
그러한 그녀의 행동에 점점 짜증이 났지만 낚시꾼의 심정을
낚시인이 이해못하면 누가 할수있을까 생각하고 이해했다.
그러던중 회사의 중요한 업무관계로 휴일에 출근한 날이 있었는데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 응 자기야 나여기 안동댐인데 나 지금 월척 했어"
무척이나 흥분된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황당했다.
지금껏 나 없이 혼자 낚시를 다닌적이 없는 그녀가 이제는
단독출조까지 감행 하다니 ...
-------------------------------------------------------------------
낚시꾼이라면 누구나 다 알만한 험한 계곡과 저수지의 힘든 천렵
의 고행에 웬만한 남자도 단독으로 출조한다는 것은 꺼리는 일인데
그것도 젊은 여자의 몸으로 서슴없이 감행한다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의 이기심에서 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평생의 반려자로서의 여자
의 본모습은 이런것이 아니라 남자의 출조길에 도시락을 챙기고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을 건넬 정도로 평범함을 생각했었다.
그후론 의식적으로 그녀의 낚시출조를 달갑지 않는 표정으로
대하고 동행하는 횟수도 줄어들기 시작했었지만 그녀의 낚시출조
는 점점 그횟수나 심도가 깊어만 가는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도저히 이대로 둘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고민하다
마포의 포장마차에서 술을 엄청스리 마셨다.빈속에 소주2병을
마시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용케도 그녀의 집에 전화를 걸었고
여의도 둔치에서 그녀와 만났다.
그런데... 둔치 난간에 기대어 활짝웃는 그녀의 어깨엔
낚시가방이 있지 않은가...
요즘 양화대교 밑에선 밤낚시가 간혹 장어가 올라온다며 이왕이면
두어시간만 대를 담궈 보잔다.... 너무나 어이가 없어 술이 확
깨는것을 느꼈다.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돌아서버렸다.
그녀를 두고 오는길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생각을 했지만
엄청스리 혼란한 정신에 아무런 판단이 서질 않았다.
결혼을 한후에 주말마다 오히려 내가 홀아비 신세가 되는것은
아닌지, 저상태가 지속된다면 가정의 살림살이가 온전히 유지
될지도 의심이 되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그녀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러한
시점에서 그녀를 포기 하는것이 나을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어
하나둘 그녀와의 추억을 지우기로 결심했다.
사무실로 그녀의 전화가 몇번 왔었지만 출장이나 외출을 핑계로
받지 않았다.
내가 먼저 그녀에게 낚시의 참맛을 알려주고 이제와서 그것으로
인해 헤어짐을 강요한다는것은 커다란 모순인출 알기에 나의
마음도 무척이나 괴로웠다.
한달여가 지난 늦은 여름에 친구놈 한테서 연락이 왔다.
다짜고짜 만나잖다. 지방출장을 떠나 언 6개월 만인지라
반갑게 약속장소로 나갔다.
친구중에 유일하게 나를 생각하고 이해 해주는 녀석이 바로
이놈 인지라 아직까지 서로에게 이놈저놈 하지만 서로에게
믿음이라는 신뢰감 만큼은 다른 친구들의 백곱절은 될만하다.
자주 만나는 신촌의 허름한 주점... 그곳은 그놈과 나의
20대의 추억이 듬뿍 묻어있는 장소로 대충 잘라놓은 통나무
탁자엔 오랜세월 동동주의 향이 스며들어 반질한 윤기가 흐르고
아직도 30촉의 백열등에 종이갓을 씌워 나름대로 은은한 분위기
를 창출하고 있는 자그마한 주점...
아마도 그곳에서 친구놈과 나의 입영전야를 치르었고 친구놈의
안사람도 그곳에서 처음 보았다.
투박한 나무의 문을 밀고 들어가보니 친구놈이 손짓을 한다.
그런데 그옆엔 그놈의 안사람과 그녀가 앉아 있었다.
순간으로 무척 당황했지만 덤덤한 미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동동주 한사발을 비울동안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않았다.
---------------------------------------------------------------------
평소의 눌러쓴 모자와 통넓은 바지에 박스형 T를 입은 모습과는
달리 아래위로 정갈한 베이지색 정장의 원피스를 입고 처음
만났을때의 가지런한 단발머리에 하얀 레이스 머리띠를 하고있는
그녀는 과거의 설레임을 일깨우기엔 충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친구놈이 먼저 말물을 열었다.
" 요즘은 낚시터에서만 살지 않는가 보군? 오늘같은 주말에
이렇게 네놈을 볼수 있는걸 보니..."
나는 피식웃으며 그냥 눈앞의 술잔만 비워냈다.
무슨말을 해야할지 말문이 막혔고 고개만 떨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술기운이 퍼진 눈동자로 희미하게 바라보고 있던중
친구의 아내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그녀는 친구놈 안사람의
사촌동생 이라는 사실과 나에게 호감을 갖은 동생이 나의 원초적
낚시 역마살을 사전에 고쳐 보려고 계획적인 낚시 중증환자 연기
를 했었다고 말했다.
나는 순간 무슨 둔기로 뒤통수를 맞은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나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느꼈다.....
집으로 배웅해주는 길에 그녀에게 청혼을 했고 그녀는 흔쾌히
승낙을 했지만 절대 낚시는 혼자 가지말라는 것과 한달에 2번
이상은 안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나에겐 너무나 지키기 힘든 약속이지만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러자고 했다.
그해 겨울 첫눈이 내리는 배경을 보며 우리는 화촉을 밝혔다.
나는 그약속을 충실히 지켜나갔다. 주말엔 아내와 요리도 만들고
주말 연속극이 이처럼 재미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느덧 아내는 첫애를 갖아 늦가을 살이 통통히 오른 붕어와
흡사한 모습으로 따뜻한 봄날을 맞이 했다.
낚시꾼에게 붕어의 산란철인 봄이 얼마나 참기힘든 시즌인가?..
겨우내 묻어두었던 먼지쌓인 낚시장비을 꺼내 손질하고
새줄을 달고 저마다 월척의 꿈으로 설레임에 출조전날 잠도 자지
못하는 꾼들의 마음은 실로 말을 해야 아는 것은 아닐게다.
만삭인 아내에게 차마 낚시를 간다는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녹슨 386의 머리를 회전시켜 출장을 핑계로
나름대로의 시나리오를 짜고 회사엔 월차휴가를 냈다.
차트렁크엔 항상 나의 낚시도구가 완비된 상태이므로 나는 양복에
구두까지 신고 완벽한 표정관리를 하며 현관 앞에서 배웅하는
아내를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아!~~~~ 이 얼마나 오랜시간의 기다림 이었나!
벅차 오르는 자유의 기쁨에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 곧바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노오란 개나리
꽃빛의 장관을 보며 신나게 차를 몰았다.
발안IC를 빠져나와 종전에 회사 상무님의 소개로 한번 들른적이
있는 방농장내의 아담한 저수지... 아마도 지금쯤 저수지 가운데
의 솔섬밭에는 키높이의 갈대숲 사이로 펄덕이며 새봄의
용트림을 하는 3,4짜의 붕어들이 그 살오른 몸짓을 하겠구나
생각하며 농장앞의 호젓한 길을 지나 저수지 앞에 차를 세웠다.
스스한 봄바람이 갈숲을 흔들고 저수지 관리인의 배만 한가로이
말뚝에 묶여 있었다.
평일에 낚시를 온적은 그리 많지 않지만 이처럼 고요함이
베어있는 저수지의 모습은 평일이 아니면 볼수없는 즐거움이다.
관리인에게 배삯을 지불하고 낚시도구를 내리려 트렁크를 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인가...
있어야할 낚시가방과 며칠전 새로 사둔 3단 다용도 의자및 도구
가 보이질 않았다...
---------------------------------------------------------------------------------
한동안 멍하니 허탈한 모습으로 매점앞 평상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이틀전 틀림없이 낚시의자를 구입하여 차 트렁크 안에
넣을때 가지런이 놓인 낚시장비들을 확인 했었는데... 하며
골똘히 생각을 했다.
을씨년한 철새의 무리들만 수면위로 소리내어 날아가고 아직
설익은 봄볕에 움츠려지는 몸을 부비며 나의 시나리오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감지했다.
엉키고 흐트러진 잡목사이의 갈숲길은 저수지 물가를 둘러싸고
멀리 둑방 끝까지 이어졌다. 발아래 밟히는 마른 갈대줄기 끝에
연초록 물빛이 오르고 띄엄 띄엄 수면의 삭은 수초사이엔 텀벙
대는 붕어를 쉽게 볼수 있었다.
잡겠다는 의지를 버린 상태에서의 그러한 모습을 보는 관점은
사뭇 달랐다. 후세를 이어가겠다는 놈들의 산란행위가 오히려
신비하고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시커먼 등이 힘있어 보이는 놈들이 허연 배를 드러내며 연신
꼬리 지느러미를 수초에 두드리는 장면은 정말 가관이었다..
집으로 가자!
비록 낚시는 하지 못했지만 답답한 가슴을 쓸어낼 맑은 공기와
봄의 기운이 가득 서린 저수지의 풍광을 느끼지 않았는가...
발을 돌리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 여보세요" " 응 나야.. 자기 지금 거기 어디야".. 아내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나는 흠짓놀라 답변을 얼벼무렸다.
" 어...... 여기, 그러니까.. 안성지사에 다왔어... "
아내는 조금 의야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늦었어?" "아~.. 그게 평일인데 왠 도로가
막히는지..." 순간 아내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 자기 출장간다는거 거짓말이지.. 솔직히 말해."
핸드폰을 든 손에 땀이 쥐어졌다. 나는 모든걸 이실직고 할수
밖에 없었다. 오전에 회사동료 권대리가 업무상의 일로
집으로 전화를 했었나 보다. 나의 핸드폰으로 여러번 전화를
했었지만 들뜬 마음에 벗어놓은 양복저고리 안에서 울리는
신호음을 듣지 못했던 나의 불찰이었다.
그길로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집앞에서 살기등등한 아내의 모습
을 생각하니 쉽게 현관문을 열수 없었다. 구두에 묻은 흙을 털고
있을때 아내가 문을 열었다.
흠짓 놀란 나는 눈이 동그래지며 그녀의 불호령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아내는 너무나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맞이 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쟈켓을 입고 모자까지 쓴 아내의 옷차림과
거실에 쌓여있는 낚시장비들이 더욱 나를 놀라게 했다..
" 당신 이게 다 뭐야?" " 어디 가려구 그래?" 혹시 내가 당신을
속였다고 지금 낚시 가려고 그러는 거야?" ..
만삭의 몸으로 나에 대한 복수로 출조를 감행하려나 보다 생각
하니 나는 너무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내는 다정스레 말했다. " 어차피 자기가 월차를 낸거
오랫만에 자기하고 낚시를 가고싶어, 너무 힘든곳 말고 조용
하고 경치좋은 곳에서 하루 지내고 오자."
나는 감격의 물결이 저 발끝으로 부터 밀려오름을 느꼈다.
와락 아내를 안아주었다.
서둘러 장비를 차에 실고 다시 방농장 저수지로 차를 몰았다.
아내는 어제 차안을 청소하면서 트렁크속의 낚시장비를
하나 하나 손질해서 창고에 넣어 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동안 참기힘든 낚시출조를 인내하며 가정의 안정된
기초를 마련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는 아내의 말은 더욱 나를
미안하게 만들었다.
1시간 여만에 다시 도착한 방농장 저수지....
나는 오전에 봐두었던 솔섬밭 자락의 평편한 자리에 조그만
텐트부터 세우고 저수지 관리인을 졸라 관리사무소의 푹신한
쇼파와 땔감을 얻어왔다. 그럭저럭 모든걸 준비하고 나니
벌써 오후 4시가 훌쩍 넘어섰다.
4월 말의 날씨지만 아직도 그추운 뒷맛이 남아 있던터라 만삭인
아내의 건강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나는 삭은 갈대 물자리에 2.0,2.5, 3칸대를 펼쳤고, 아내는
그옆에 나란히 1.5칸과 2칸대 2대를 펼쳤다.
뒷편은 솔밭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양편으로 빽빽한 황금색
갈대들이 아늑하게 바람을 막아주어 구멍낸 페인트통의 모닥불
만으로 훈훈한 온기를 느꼈다. 가끔 주위에서 텀벙대는
붕어의 물소리와 갈숲을 타고 흐르는 바람의 속삭임만 들리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의 그녀와나, 그리고 뱃속의 우리아기....
별들이 초롱이 밤하늘에 오르고 나의 어깨에 기대어 행복함을
느낀다는 아내에게서 모든 붕어들이 평안함을 느끼고 쉴수있는
수초를 생각했다. 아내는 나에겐 수초같은 존재임에 틀림이없다
업무상으로든 개인일로든 쫓기어 피로하고 힘든 때에 항상
휴식과 평안을 주고 나의 삶의 진의를 깨닳게 해준다.
쇼파에 앉아 담요를 덮은 아내는 이내 잠이들었다.
갈대앞 수면에 뾰족히 나온 케미불빛이 밝아지면서 서서히
오른다. 아내의 1.5칸대에 모처럼 입질이 찾아 왔지만 나는
가만히 그모습을 바라보며 아내의 어깨를 감싸 주었다.
수면에 비친 별빛은 수만개의 케미빛처럼 아름다운 수채화를
만들고 .... 저멀리 반쪽달이 수줍은 모습으로 시커먼
산자락을 넘어 가고 있었다..... ( 끝 )